정은혜의 비주얼스코어에 대하여

악상樂想은 소리와 음악이 되기 이전의 내용으로 비음악적 형태로 진동하는 정보다. 그 '상想'의 음악적 형상形像을 기호로 표현하는 것이 악보인데, 표음문자와 같이 소리가 나는 (거의) 그대로를 기록하는 방식이 바로 오늘날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기보법이다. 처음 이 기보법이 발달하는 과정에서 음의 높낮이와 음의 길이를 모두 정량화 시켜 기록한다는 것은 획기적인 발명이었고 이는 근대적 과학적 세계관과도 맞물리는 사고방식을 바탕으로 한다. 사람의 인지방식과 세계관은 다양하다. 크리에이티브 뮤직 아티스트인 정은혜는 정량화된 음가 너머의 소리와 또 소리 이전의 내용들을 자신의 음악적 내용의 본질로 삼기 때문에, 기존 기보법이 자신의 악상을 제대로 표현하고 구현하는 데에 있어 부족하다고 느꼈다. '그래픽 스코어' 또한 표음문자나 오늘날의 기보법과 마찬가지로 구현하고자 하는 음형 그 자체를 시각적으로 나타내는 경우가 많지만, 정은혜의 비주얼스코어는 문자 자체의 형상과 색에 다층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상징성을 차용하며 이를 언어적으로 구조화하는 차별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