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화성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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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악기로 피아노를 연주하는 크리에이티브 뮤직 음악가로서, 나는 지난 300여년 동안 발전한 서양 음악적 '화성' 개념에 대해 비관습적인 시각을 유지해왔다. 한 한국 음악가가 ‘한국 전통 음악에는 화성이 부족하다’고 쉽게 말하는 것을 듣고 매우 민망한 적이 있었다. 노년 세대의 서구세계에 대한 옥시덴탈리즘적 동경과는 다르게, 젊은 세대에서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서구의 사상과 문화적 잣대로 자신의 문화를 재단하는 류의 오리엔탈리즘이 은연중에 퍼져 있음을 발견하며, 이러한 문제가 앞으로는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는 경각심을 느꼈다.
우리가 서양음악에서 주로 발달한 화성학도 우주, 범위를 좁혀서 전 지구적으로 공통인 소리의 물리적 이치에서 비롯된다. 차이를 만드는 것은 동일한 자연 현상을 어떻게 조작하고 활용하는가에 따르며, 이는 문화적 신념, 철학 및 세계관에 영향을 받아 그 음악 표현의 문화적 형태적 차이가 발생하게 되었다.
우리가 익숙한 기준과 규범, 개념들은 변화의 역사를 갖고 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러한 현재의 익숙한 관점들이 뿌리 의미에서 크게 벗어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모든 것의 진정한 본질을 파악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할 수 있다. 나의 관점은 완전히 혁신적이거나 순수한 상상의 결과가 아니라 어휘의 어원과 현재 더 많이 퍼져 있는 음악 논의 이면에서 면면히 전해진 오랜 고대적 지식에 근거를 두고 있다. 더군다나 이미 전통적 세계관과 이의 맥락에서 발현되고 수리적으로 구성된 음악을 설명하는 용어들이 서양음악이 전해지며 같은 용어를 다른 의미로 쓰게 되어, 원래의 의미를 그대로 덮어버린 경우가 매우 흔하다. 따라서 마치 고고학자가 켜켜이 쌓인 시대별 유물을 발견하듯 화성이라는 말도 이해해야한다.
고무적이게도 나는 온라인 한국어 사전이 '화성'의 예전 의미를 잊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사전은 ‘화성’의 두 가지의 기본적으로 다른 의미를 제시했다.
화성
1. 음악 일정한 법칙에 따른 화음의 연결.
2. 음악 판소리 창법에서, 상ㆍ중ㆍ하의 성음(聲音)을 어긋남이 없이 상ㆍ하청(上下淸)을 맞게 내는 소리.
1번은 서양 음악에서 정립된 화성의 원칙에 관련되며, 2번 정의는 판소리 노래에서 발견되는 '화성'이 이뤄지는 소리의 특정한 상태와 관련되는데, 잘 알려져있지 않으며 다소 알기 어려울 수 있는 개념이다. 물론 이 사전은 이 용어의 철저하게 전문가 수준의 정의를 제공하지는 않지만 한국의 전통적 ‘화성’이 존재하며, 이 말의 본 뜻은 서양의 화성학이 한국에 소개되기 이전부터 발달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나는 이 두 '화성' 개념이 차이점이 있으나,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모든 인간 문명의 어떤 법칙들이 철저히 주어진 물리적 이치에 기반하여 짜여진 것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어떤 형태의 음악에서든 화성은 우리 주변의 물리적 현실과 묶여 있으며 그러한 현실에 조건지어진다. 우주의 물리적 현실 또는 더 구체적으로 지구의 물리적 상태는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며 물리학의 자연 법칙이 예술, 사회학, 과학, 금융, 철학, 종교 등과 같은 우리 세계의 모든 측면에 영향을 미친다. 분명히 음악 음계와 음률 제정 방식은 (주로) 동서양 두 가지 다른 문화에서 개발되었고, 구체적인 음의 수치를 얻기 위해 각기 다른 접근 방식(고대그리스 피타고라스는 현의 진동과 정수 비율로, 동양에서는 81수인 기본음을 시작으로 삼분손익하는 율관의 비율로 접근했다)을 통하더라도 궁극적으로 유사한 결과로 수렴했다. 이렇게 서양의 12음계와 동양의 십이율려가 거의 동일한 체계를 갖춘 것이다.
서양의 조성 화성학(tonal harmony)은 특정 음계를 제공하는 평균율 내 개별 음의 작동을 기반으로 개발 및 체계화되었다. 음계는 마치 팔레트에 한 칸씩 차지하는 개별 색 물감들의 집합과도 같으며 이 "음의 팔레트" 내의 개별 음을 조직함으로써 하나의 음악적 엔티티로서의 곡을 구축하게 된다. 개별음을 음악적으로 “조화롭게” 만드는 특수한 방법은 기계 및 수학적 규칙을 위주로 구체화되어 화성학이라는 근대적 학문을 이뤘으며 이것이 ‘화성’이라는 이름 아래 오늘날 대부분의 음악 학교와 교육에서 다루는 내용이다.
'성聲'의 조화로써의 '화성' 또한 조화롭고 균형있는 소리와 관련이 있다. 화성이란 소리의 상, 중, 하를 시중(timely center)에 맞게 정확하고 균형있게 내어 조화를 이루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한 음에 담긴 화음을 조절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서양 화성학에서 화음(chord)는 3음 이상의 개별 음이 결합된 형태를 말하며 일반적으로 각 음정(interval)이 3도(tertian)다. 즉, 하나의 화음(chord)을 이루기 위해 세 개 이상의 개별 음들이 요구된다. 그러나 한국 전통음악에는 한 음에(도) 화음이 있다. 물론, 위에 사전의 화음에 대한 정의에서 말하는 상-중-하청은 전통음악 필드에서 일반적으로 인식하는 바를 일컫는데 이는 한 악기와 연주자가 곡의 중심이 되는 청을 잡음으로 자연스레 형성되는 높고 낮은 음역대(register)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한국 전통음악의 실재를 들여다보면, 마치 하나의 원자와 같이 한 음의 차원에서도 그 상-중-하를 발견할 수 있다.
“모든 음에는 반드시 상중하가 있어. 이것이 중요한 것이야. 서양에서는 배음을 기본음 위에 쌓이는 높은 음정들 만을 배음으로 보더군. 그러나 낮은 배음도 반드시 있어. 중심 음을 내면 상과 하가 짱짱하게 그 양극점을 버티어 내는 것이야.”
- 판소리 배일동
사실, 자연 속의 각 음은 본질적으로 그 안에 분화되어 펼쳐지기 이전의 모든 다른 여러 음표를 내포하며, 동양 음악 조율법의 발전은 이러한 원칙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즉, 한 음의 그 핵은 높은 배음(harmonics)과 낮은 배음(subharmonics)을 품고 있으며, 이러한 배음들을 적절한 힘과 압력이 가해져서 이러한 배음이 강조될 수 있는 진동수를 지닌 물체를 진동함으로써 확연히 드러나게 된다. 서양음악은 점차 한 음의 기본음만을 깔끔하게 분리해내어 한 음이 전체 속의 부품으로서 기능하도록 하는 방향으로 발달했왔으나 한국의 전통음악은 소리가 물리적으로 지닌 자연 그대로의 힘을 활용함으로써 한 음이 전존재적인 전체를 이루도록 하였다. 한 음은 기본음을 중심으로 무한히 펼쳐지는 모든 소리가 함의된 씨앗과 같아, 이는 전체이면서 그 특정 소리의 발로가 되는 단초가 된다. 한 음이 구체적인 형태를 갖추게 되는 것은 오로지 3에 이르렀을때야 비로소 가능해진다. 이렇게 하나의 소리의 중심은 상-하청이 설정하는 팽팽한 날줄 안에 존재한다. 이를 통해 터져나온 한 음은 상중하의 삼성이 고르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