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화성 -2

오늘날의 ‘화성’은 상당히 축소된 개념인데, 대부분의 현대의 문명과 사상이 그러하듯 현대 한국인에게 있어서도 일반적인 의미의 ‘화성’은 서양 음악과 이를 지지하는 세계관, 특히 근대적 세계관에 기반한 것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유럽이나 관계된 문화권에서는 그럴 수 있다지만, 서양음악적 특수성을 지닌 개념이 한국의 문화에서 보편적 진리로 받아들여지고 본토의 개념이 오히려 특수한 것으로 일컬어지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더욱이 교육기관을 통해 훈련된 음악가들은 ‘화성학’이라는 이론이 또한 불변의 보편적 법칙으로 믿기 쉽다. 백번 양보하여 현대 한국인 스스로가 한국 전통문화를 시대적으로 또 세계적으로도 특수한 문화로 이해 하듯이, 서양문명 주도하에 널리 받아들여진 문화와 이론 등을 지리적, 문화적, 시대적 맥락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한국의) 음악교육기관에서는 스스로 질문하고 사고를 하도록 하는 인문학적 바탕을 키우기보다는 당면한 과제로서의 주어진 기술을 재빨리 습득하고 그 기술의 완성도를 증명하는 방식의 연주와 창작활동에 집중하게 된다. 많은 복합적인 교육 여건과 풍조로 인해 기본적인 개념들에 대한 고찰에 이르지 못하고 자신의 행위를 규정짓는 주어진 관습들을 그저 반복하게 된다. 창조는 옛말처럼 온고지신 하여 이뤄진다. 옛것을 익힌다는 것은 옛것을 그대로 본따 똑같이 반복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 옛것을 이루는 원리를 파악하고 그것을 현재와 통하게 만들면 자연스럽게 새롭게 될 수 밖에 없다.

18세기 장-자크 루소는 동양의 노장사상과 상당히 닮은 철학을 주창했다. 그는 인간이 만든 문명의 인위적 구조들이 사람의 자연적으로 타고난 성정을 오히려 타락시킨다고 했다. 그리고 인위적인 사회적 구조에 매이지 않고 각 개인이 모여 자율적으로 공동체를 형성하여 합의하에 정한 규칙들로 그 사회를 이끌어나가는 이른바 ‘사회계약설’이라는 정치철학을 제안했다. 그는 본질적으로 같은 이유에서 루소 당대의 음악 풍조를 매우 비판적으로 바라보았다. 루소는 <언어의 기원>에서 언어, 말에 대한 고찰에 이어서 음악의 기원, 멜로디, 화음 등에 대한 그의 이론까지 다루고 있다. 이 책에서는 동시대의 음악이론가이자 작곡가인 장-필리프 라모의 이론과 그 이론에 따라 작곡을 하고 음악을 이해하려는 음악가들을 정면 비판했다. 라모는 1722년에 출판한 그의 저서 <Traité de l'harmonie>를 통해 오늘날 서양 음악 이론인 화성학의 토대를 마련했다고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데카르트의 합리적 이성주의에 큰 영향을 받아 단순히 실용적인 측면에서 다뤄지던 내용들을 일종의 보편 과학적 법칙으로 정리했으며, 프랑스에서는 ‘음악의 아이작 뉴튼’으로 불리며 유명세를 떨쳤다.

라모의 화성학에 비판적이었던 루소는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한) 소리에는 함께 공존하는 모든 소리의 배음들이 있다. 이 배음들은 그 소리에 가장 완벽한 화음을 내기위해 그것들 사이에 갖춰야 할 음정과 강도의 비율이 있다. 여기에 3도 음정이나 5도 음정, 혹은 어떤 다른 협화음을 추가해보자. 그것을 추가하지 말고 중복되게 하자. 그렇게 되면 음정의 비율은 그대로 두지만 강도의 비율은 변화시키는 것이다. 나머지는 그대로 두고 하나의 협화음을 강화시키면, 당신은 조화를 깨트리게 될 것이다. 당신은 자연보다 더 잘하려다가 더 못하게 되는 셈이다. 당신의 귀와 감식력은 잘못 이해된 기교로 무디어진 것이다.

화성학 법칙에 따라 화음을 쌓아 올리면, 본래의 한 음에 이미 존재하여 그 한 소리를 이루는 배음들의 일부를 증폭시키는 결과를 낸다. 루소는 이것이 오히려 한 음 자체가 지닌 조화와 균형을 무너뜨리는 것으로 본 것이다.

화음(화성)의 법칙과 소리의 비율을 천 년 동안 우리가 따져본다고 할 때, 어떻게 이 예술을 모방의 예술로 만들겠는가? 이른바 그 모방의 원칙은 어디에 있는가? 화음은 무엇에 관한 기호인가? 그리고 우리의 정념과 화음 사이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는가?

현대의 일반적인 관점에서 모방은 모방의 추구하기보다는 지양하는 가치이기 때문에 위의 텍스트에서 루소가 ‘모방의 예술’이 뜻하는 바가 자칫 오해받을 소지가 있다. 서양의 예술 철학에서는 모방을 예술의 본질로 여겼다. 루소는 사람의 말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정념이라고 말했고 음악은 언어의 연장선상에서 발현된 사람의 정념을 ‘모방’하는 예술로 보았다. 그에게 음악의 본질은 그저 음악적 소리의 물리적 진동을 조절함으로써 수리적으로 구조화하는 것이 아니다. 분명히 표현하고자 하는 바가 있음을 전제로 하며, 그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최대한 생생하게 표현하는 것이 예술이 지향하는 바인 것이다. 이렇게 그 뜻하는 바를 생생하게 표현하는 것을 그는 ‘모방’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또한 루소가 언어의 발로이면서 멜로디가 표현하고자 하는 모방의 대상을 인간의 ‘정념’이라 한 것은 인위가 아닌 인간의 자연적 성정을 드러내는 것이야 말로 음악의 존재의 이유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단순히 이성적이고 추상적인 정보들 너머에 인간 본연, 자연으로서의 인간이 겪게되는 희로애락의 감정(‘불평, 코통이나 기쁨의 외침, 위협, 탄식 등’)을 생생하게 표현하며 서로 교류하고 위로하는 것이 음악이라고 볼때에, 라모를 위시한 음악 이론가들의 관점으로 갖추어진 화성학 이론에 따른 음악은 본질적으로 도대체 어떠한 존재 의미가 있느냐 묻는 것이다. 이어서 그는 일축했다.

화음은 그 체계에 속하지 않는 많은 소리 또는 음정을 사라지게 하거나 파괴한다.

18세기 루소가 지적한 이러한 사실은 20세기로 넘어오면서 서양 음악가들이 기존의 체계에서 구조화하는 창작 방식에 한계를 느끼며 자각하게 된 것이기도 하다. 이때에는 19세기까지 견고하게 구축되어온 합리적 이성주의와 근대적 사고방식에 대한 회의와 반성이라는 분위기에 맞물려, 화성학적 체계를 탈피하려는 무수한 시도 속에서 오늘날 현대 클래식, 실험음악 등의 흐름들이 형성되었다. 이는 철저히 서양 음악의 역사라는 맥락속에서 일어나는 변화임을 다시 한번 객관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필자는 피아노를 주된 표현의 수단으로 삼는 음악가이고 장르적 구분도 다분히 국외에서 발달한 분야를 따르고 있지만, 음악이라는 인류의 문화를 이해하고 살피는데 있어서는 내 출생지를 뿌리로 삼고 그 문화적 맥락과 역사를 기어코 연결하여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한편, 루소가 비판했던 라모 등의 음악 이론가들에 의해 발달하기 시작한 화성학의 화성이 아닌 다른 “화성”을 논할 수 있다. 이는 루소가 인지했던 전제들에서 출발할 수 있다. 첫째로 ‘(한) 소리에는 함께 공존하는 모든 소리의 배음’들이 있다는 전제다. 한 소리가 음악적인 소리로서 분명한 음고를 나타낼때이든 그렇지 않든 모든 소리는 다양한 주파수의 소리가 어우러져 있음은 과학적인 사실이다. 그리고 한 음의 기본음이 갖춘 무수한 배음은 마치 태양이라는 무거운 별 주위로 다양한 거리를 두며 공전하는 행성들과 같이 그 존재감을 드러내는 정도가 기본음과 다르게 나타난다. 사실 한 소리와 한 음은 음의 고저로만은 나타낼 수 없는 도량형을 지니고 있다. 소리가 지닌 수량적 내용 조차도 주파수로 표현되는 고저 이외의 어떠한 부피감, 질감 등의 다른 물리적 특징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한국 전통음악에서는 한 음을 1차원적인 점으로 보지 않았고, 멜로디 즉, 선율(旋律)을 점과 같은 개별음의 연속체로서의 선(線, line)으로 보지 않았다. 한 음에는 상-중-하가 있다. 이에 한 음을 더 나아가 상-중-하, 좌-중-우, 전-중-후(앞뒤)의 육합(六合)으로 이뤄진 기하학적 음으로 보았다. 육합은 사방천지 뜻한다. ‘사방천지’라고 하면 오늘날에는 과장하여 강조하는 수사적인 표현으로 많이 쓰이지만, 실제로는 공간의 물리적 구분을 뜻한다. 3차원 공간과 입체를 나타낼 때에는 x, y, z의 세 축을 설정한다. 마찬가지로 동양에서는 예로부터 천지라는 상하 날줄과 좌우의 축, 전후의 축, 이 세 개의 축과 각 축의 양극이 나타내는 상·····후의 합이라는 개념으로 물리적 공간을 기하적으로 이해하고 표현하였으며 이를 육합이라고 부른 것이다. 즉, 한 음이 육합이라는 말은 소리가 공간성을 지닌 입방체라는 말이다.

하나의 소리는 어디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도 모르는 미묘한 하나의 점이 공간적으로 펼쳐지면서 악기의 울림통을 적절히 부딪히고 진동하며 다양한 각을 만들어낸다. 당구공을 적절한 각도로 세게 치면 무수히 많은 변에 부딪혀 닿으면서 많은 각을 내게 된다. 당구공은 아주 약하게 친다면 겨우 한 변을 치거나 아예 아무데도 닿지 못할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소리도 압력에 따라서 공명통 및 공명하는 공간을 무수히 많이 치거나 적게 치면서 소리의 부피와 다양한 결을 만들어낸다. 이런 이유로 큰 악기일 수록 풍성한 소리를 내기 어렵다. 더블베이스는 줄이 길고 두꺼워서 한번 튕기거나 마찰을 일으켜 온전한 진동을 일으키는데에 더 큰 힘이 들 뿐만 아니라 공명통도 그 어떤 악기보다도 커서 이를 제대로 활용하여 소리를 내려면 더 강한 압과 가속도를 주어야만 비로소 무수한 각이 펼쳐지는 소리를 만들어 낼 수 있다.

한 음의 화성은 순수하게 물리적인 차원에서만 본다면 일차적으로 악기의 진동을 일으키는 힘(공기압, 타격의 세기, 마찰의 세기 등)과 악기의 공명통과 악기를 떠나 공명하는 공간의 실질적인 형태와 크기의 도량형에 영향을 받는다. 별 모양의 얼음 트레이에 물을 얼리면 별 모양의 얼음이 나오듯, 음악적 소리를 발생시키는 물리적 여건인 악기의 특수한 형태가 소리의 형상에 반영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현악기의 현이나 타악기의 멤브레인 같이 직접적으로 진동하여 소리를 내는 물질 말고도 주위를 둘러싼 모든 물질은 최초로 발생한 진동에 의해 함께 진동하게 된다. 연주회장 같은 공간까지 미처 생각하지 않더라도, 연주자 입장에서는 자신의 악기의 공명통을 어떻게 울리느냐에 따라 한 음이 지닌 화성이 확연히 드러나도록 표현하거나 그렇지 않을 수가 있는 것이다.

십이율려를 구하는 방법인 삼분손익법을 통하여 보면, 최초의 음인 ‘궁’, 황종음을 셋으로 나누어 더하거나 빼는 방식으로 오음이 형성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삼분손익을 통해 얻게되는 첫 음은 궁음의 완전5도라고 할 수 있는 ‘치’음이고 이를 반복하면 ‘상’ ‘우’ ‘각’의 순서로 음을 구할 수 있게된다. 이를 순서대로 나열하면 우리가 아는 오음 음계가 나온다. 또한 삼분손익을 지속하면 12율려의 모든 음이 나온다. 이를 바꿔 말하면, 한 음 자체에 오음이 있고, 궁이 아닌 다른 소리도 각각 오음을 지니고 있다 할 수 있따. 한편, 오음에는 방위가 있다. 궁음은 중심이고 상, 각, 치, 우는 사방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아는 ‘도-레-미-솔-라’로 표현되는 오음 음계를 다룰지라도 ‘도’라는 궁음은 궁상각치우라는 오방을 모두 지니고 있고, ‘레, 미, 솔, 라’의 각각의 음 또한 오음, 오방을 지니고 있다는 뜻이다. 그 한 음이 갖춘 오음의 존재 자체가 화성적 조화를 이루고 있음은 물론이고, 지구 자전축의 각도와 공전궤도상 위치에 따라 계절이 달라지듯 방위, 좌표상 공간적 위치에 따라 다채로운 소리를 내는 것이 바로 화성인 것이다.

한 음의 화성을 펼쳐 드러내려면 위의 당구공 비유처럼 강한 압으로 무수히 많은 각을 만들면서 공명통을 울려내어야한다. 피아노를 칠때에 한 음의 기본음 이외에 피아노의 모든 현과 몸체의 진동수를 활용하여 더 넓고 결이 다양한 소리를 낼 수 있다. 조심스럽게 타건하면 특정 현과 그 주위를 위주로 진동한다. 같은 현을 아주 강하게 진동시킨다면 공기압과 현의 물리적 진동이 피아노의 다른 현을 더욱 격렬히 진동시킬 수 있고, 특히 관계된 배음을 지닌 현을 제대로 진동시킨다면 훨씬 깊이감이 있는 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이다. 간단하게 해볼 수 있는 실험이 있는데, 피아노에서 가장 낮은 C음을 연주하고 C에 관계된 배음인 한 옥타브 높은 C와 완전5도인 G현을 소리가 안나게 건반을 눌러 약음(mute)하지 않도록 현을 열어둔다. 그리고 낮은 C 건반을 매우 세게 내려치면 하나의 음인 C음이 열어둔 현에서 진동하여 관련 배음이 증폭되어 크게 들린다. 즉, 한 음을 연주했음에도 화음이 드러나는 것이다.

이와 달리 화성학의 화음 법칙에 맞는 소리를 내기 위해서 하나의 음은 그 안에 담긴 잠재된 다양한 배음을 제거해야만 한다. 이상적인 합창단원은 오페라가수와 달리 자신의 목소리의 개성적인 질감을 많이 덜어내야만 한다. 그래야만 다른 단원들이 내는 다른 음과 잘 섞여서 화음을 이뤄, 합창단이라는 전체가 마치 하나의 악기인 것 처럼 연주할 수 있게된다. 반대로 판소리의 화성은 창자 자신이 얼마나 자유자재로 자신의 목을 조절하여 인간의 생사고락의 다양한 모습을 실감나게 전하는 것을 이상적인 기준으로 삼는다. 심봉사가 오열을 할때에는 발림도 인위적으로 꾸며내듯 하지 않고, 목소리가 찢어지고 갈라지듯 하여 소리꾼이 심봉사가 된 듯이 표현하는 것이 소리의 조화를 이룬 것, 진정 화성을 이룬 것이다.

이렇듯 한국의 전통음악에서는 하나의 소리에서 발생하는 이러한 모든 소리의 조화가 바로 화성이라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화성은 표현하고 교류하고자 하는 바의 도량형이 소리로 환원되어 나타날때에 그 의미(뜻과 감정)를 얼마나 적절하게 조절하여 조화롭게 하는가에 관한 것이 된다. 시중이란 말은 때에 따라 그 중심이 달라진다는 말이다. 바다의 심연을 음악으로 표현한다고 할때 깊고 낮은 음을 내는 것이, 작은 새들의 지저귐을 표현한다고 하면 높고 잘게 내는 소리가 시중에 맞는 일일 것이다. 음악에서의 중도란 때에 맞게 유연하게 에너지의 방향을 조절하여 만물의 다양한 조화를 표현하는 일일 것이다. 이 또한 넓은 의미의 화성이라고 할 수 있다.

루소는 화성학적 화음에만 의존하는 것은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실감나게 드러낼 수 없다 생각했다. 언어의 본질이 소리를 통해 감정과 뜻, 정경 등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소리를 통해 소리를 표현하는 일이된다 말했다. 다음 루소의 견해를 화성학의 화성이 아닌 화성을 논하는데에 있어 두번째로 삼을 전제이자 단초로 소개한다.

멜로디는 목소리의 선율을 모방하면서 불평, 고통이나 기쁨의 외침, 위협, 탄식 등을 표현한다. 정념을 나타내는 모든 목소리 신호는 멜로디의 원동력이다. 멜로디는 언어의 어조와 각 고유어에서 영혼의 움직임에 미치는 어투를 모방한다. 그것은 모방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말을 한다. 그것이 전달하는 언어는 분절되지 않았지만, 활력이 있고, 강렬하며 열정적이고 말 자체보다 백배 이상으로 에너지가 많다. 바로 여기에서 음악적 모방의 힘이 생겨나는 것이다. 바로 이로부터 노래의 영향력이 감성적 마음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방 즉, 미메시스(mimesis) — 자연의 재현(representation) 또는 모방 —를 예술의 본질이라 여겼다. 이후에도 서양의 철학자들이 예술을 논할 때에 ‘모방’이란 개념은 조금씩 다르게 해석되었으나 줄곧 다뤄졌고, 이는 예술적 표현은 예술 이전에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이 있음을 전제로 함을 시사한다. 모방은 실재 인간의 활동에 있어서 아주 자연스러운 학습 행위다. 아기는 엄마의 말소리를 듣기만 하지 않고 엄마의 입이 움직이는 모양을 관찰한다. 그리고 보고 들은 말을 따라하면서 말을 배워나간다. 예술가도 스승을 모사하면서 학습을 시작한다. 서예에는 모임방摹臨傲이라는 개념이 있는데, 모摹는 먼저 선생이 써준 글씨 위에 투명한 종이를 올려놓고 글자 형태를 따라 그려보는 것이다. 임臨은 ‘모’ 의 단계를 숙달한 학생이 선생의 글씨를 따로 두어 관찰하며 흉내내는 것을 말한다. 붓글씨 학습의 마지막 단계라고 할 수 있는 방傲은 선생의 글씨를 흡수하고 소화한 학생이 이제는 자신의 고유의 성정과 예술의 지향을 담아 법고창신하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자신의 독창성을 개발하여 화변화의 전과정을 완성하게 된다. 따라서 모방摹傲은 그저 대상을 흉내내는 초보적인 단계를 뜻하는 것이 아닌 ‘임’을 지나 ‘방’에 이르는 것이기 때문에 단순 모사 정도로 이해할 말은 아니다. 이렇듯 자연을 모방, 재현한다는 것 또한 예술가로서는 지난 선배들이 갖춘 예술의 형식을 ‘모임방’함으로써 가능해진다.

동양에서는 전통적으로 자연을 모방, 모사摹似 하여 표현하는 데에 대해 형사와 신사를 구분하여 파악하였다. 형사形似는 대상의 외적 형상을 흡사하게 묘사하는 것을 말하고, 신사神似는 보이는 형태 너머의 이면, 내재적 내용을 드러내어 표현하는 것을 뜻한다. 동양에서는 대상의 사실적 표현인 형사를 등한시 하지는 않았지만, 대상의 본질에 대한 충분한 관조와 이해가 수반되어야 하며 그가 지닌 기운을 생생하게 표현함을 예술의 이상적 경지로 여겼다. 루소 또한 예술과 음악도 어떠한 대상(자연, 정서)의 형과 신을 “모방”하는 것을 음악의 본질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음악의 경우, 인간이 겪는 자연스러운 정서의 이모저모가 목소리로 말로 표현되던 것이 노래(멜로디)가 되었다고 여겼다. 음악이 모방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인간의 정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음악이 이러한 모방의 대상을 형사는 물론 이를 초월하여 신사함으로써 기운생동하도록 하는데에 있어 화성학적 화성은 오히려 음악의 본질을 방해하는 요소라고 그는 생각했던 것이다.

한국 전통음악은 형식적 발현이 이러한 본질에 철저히 기대어 발달했다. 소리를 예술가, 연주자와 분리된 물질로 대상화하지 않았으며, 배우가 극 중 배역 자체가 된 듯이 소화하여 연기하듯, 음악적 내용도 철저히 연주자의 몸과 성정을 통하여 드러나고, 연주자야 말로 음악적 조화를 조절하며 이뤄가는 주체로 이해했다. 아이를 잃은 어미의 창자가 찢어지는 고통의 감정을 드러낼때에, 그저 그럴듯하게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와 같이 표현하는 것이 화성, 즉 소리를 조화롭게 하는 일인 것이다. 예술의 외적 형태도 모방, 재현의 대상의 내적인 내용이 형상화된 것이지, 음악적인 구조와 형태가 우선하거나 이 외적 형태 자체를 음악적 내용의 본질로 삼는 순간 자연의 본질, 인간 정념의 본질, 예술의 본질로 부터 멀어지는 것이다. 선후 관계가 분명하고 외적 형상이 본질을 제대로 반영한 것이 궁극적으로 더욱 아름다운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음악의 기술적인 측면에서도 최대한 자연의 물리적 여건을 그대로 활용하여, 한 음에 이미 담긴 배음과 현실 세계의 악기와 공간을 이루는 모든 물질 등을 통하는 방식으로 발달해온 것이다.

따라서 화성은 추상적 정보로 치환된 소리 값을 배열하는 수리적 논리가 아니라, 실제 음악행위를 통해 이뤄가는 조화이며, 화성을 이루는 주체가 바로 화성의 중심에 있다. 노래하는 사람에게 있어서도 역시 소리를 조절을 하는 부위인 혀가 바로 ‘중’이다. 윗턱과 아래턱이 각각 상하 강유의 수직적 날을 만들고 그 가운데에 주로 근육으로 이뤄진 혀가 움직여 모양과 위치로 조음하게 된다. 악기의 줄에도 양극에 강유가 존재하듯 상턱은 강으로 고정되었고 하턱은 조금더 자유롭게 움직이는 유에 해당한다. 말과 노래하는 사람의 입 구조에도 이렇게 상-중-하의 날과 좌우 전후의 육합이 있으며, 소리 또한 이를 반영하여 상중하가 있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중인 혀는 가운데에서 자유자재로 변화를 일으키면서 소리의 상중하를 조절한다. 훈민정음의 제자원리에도 이러한 물리가 그대로 반영되었다. 먼저 한 글자는 한 음절을 표현하는데, 이를 한 글자를 이루는 초-중-종성이 천지인의 상중하를 나타내며, 그 중 중성인 모음이 혀와 같이 가운데에서 음양 강유를 조절하게 된다. ‘가다’를 명령어로 하여 ‘가’라고 할 때에, 모음인 ‘ㅏ’를 어떠한 어조, 강도, 길이 등으로 말하느냐에 따라서 위협적인 명령조가 될 수도 있고, 달래듯한 권유가 될 수도 있고, 가벼운 인사가 될 수 있고, 어리광부리는 듯한 핀잔이 될 수가 있다. ‘ㄱ’과 ‘ㅏ’가 조합을 이루며 그 뜻의 정체성은 그대로 유지되나 모음의 조절로 인하여 사람의 감정과 말의 맛이 표현되고 뜻은 같으나 뉘앙스가 많이 달라진다. 더욱이 이러한 모음도 그 제자원리를 살펴보면 ‘중’의 위치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소리를 구분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아래 아(ㆍ)자는 하늘을 나타내고, ㅡ는 땅, ㅣ는 사람이라고 하여 이 삼재를 조합하여 다양한 모음을 만들어냈는데, ㆍ는 태양이며 이 태양은 사람 몸에서는 심장이다. 땅(ㅡ)과 사람(ㅣ)은 모두 사방의 땅 위에 있는 존재들이기도 하지만, ㅡ는 좌우,ㅣ를 전후를 표현하는 축으로 삼으면 정사각형 모양의 지표면이 만들어진다. 지구 상의 지표면을 태양이 어떠한 각도로 비추는가에 따라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기온이 다른 사계절이 만들어진다. 이와 마찬가지로 아래 아가 ㅡ과 ㅣ로 이뤄진 사방이 있는 현실 공간의 어디에 위치하느냐에 따라서 ㅏ, ㅜ,ㅓ, ㅗ와 같이 “온도”가 다른 소리가 만들어지고 그 소리의 형상인 모음 문자가 만들어진 것이다.

화성은 한 음이 가진 중심에서 에너지 향하는 방향, 각도, 에너지의 세기와 속도 등을 조절함으로써 기본음 이외의 폭을 갖춘 화음을 내는 것이다. 또한 음악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의 본질이라는 중심이 되는 가치에 맞게 음악적 외형을 조절하고 이를 생생하게 드러내는 것이고, 또한 이 모든 일에 있어 소리의 물리적 현실을 충분히 체득하여 음악적 창조의 주체자로서 그 역할을 치우침 없이 해내는 경지인 것이다.

*이 글의 장-자크 루소 인용문은 모두 한국문화사에서 출판하여 한문희님이 번역한 <언어의 기원>에서 발췌했으며, 일부 괄호로 보충한 경우는 John H. Moran과 Alexander Gode가 공동 번역한 영문판 <On the Origin of Language>를 참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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