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박拍 -1

손바닥이 마주 ‘치고’ 두 손이 서로 멀어지다 다시 부딪히기를 반복한다.

하나의 음운은 하나의 존재entity로써 자신의 존재를 이루는 하나의 사이클 (시작-과정-결과/초성-중성-종성)을 갖고 있으며, 그것이 열려있든 닫혀있든 겹쳐있든 연결되어 있든지, 어찌되었든 하나의 구분된 개체이다. 그 음운이 시공에서 발현될때에 그 첫 ‘음’이 하나의 시간적 눈금이 되는 것도 넓은 의미에서 박이라고 할 수 있다. 한 마디 구분도 넓은 의미에서 ‘박’이다. 한 소리의 탄생(생)과 팽창(장)과 그 맺음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순환과정 총체다. 한 마디도 한 박이고, 한 마디를 구성하는 여러 박들도 각각 하나의 박이다. 한 마디 안에 다양한 길이로 표현되고 음표로 표식화된 모든 음도 각각 하나의 박이며 개별의 박이 있는 것이다.

이는 지칭하는 바의 세세한 차이점을 구별하지 못하여 하나의 단어로 뭉뚱그려놓은 것이 아니라, 실재로 ‘박’이라는 한 단어가 품은 의미와 그 물리적 실재/원리가 다양한 차원에 두루 두루 적용되어 변주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양한 단계에서 논의할 수 있는 것들은 — 정해진 박자의 수들이 하나의 그룹을 이뤄 특정 박자표에 따라 구분짓는 것을 ‘마디measure/meter’라고 부르고, 마디 안에 일정한 길이와 정해진 수만큼 반복되는 것을 ‘박beat’이라 하고, 음표로 표현되는 다양한 음의 길이로 음악적으로 유의미한 선율의 일환인 것을 ‘리듬rhythm’이라고 각각 다른 이름들로 부른다 — 그 범주나 역할 등에서 차이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통하는 가장 중심이 되는 원리 또는 의미의 뿌리를 발견할 수 있다. 또한 현상적으로 다르게 드러나는 것들의 차이들을 비교/관찰/분석함으로써 본질적 원리에 다가가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뿌리가 되는 원리를 통하여 현상적으로 다양하게 현현하도록 하는 동시에 그 펼쳐진 다양한 것들과 그 운동 속에서 다시 근원적 본질을 발견하려고 하는 것이다.

박의 개념을 조금 더 좁혀나가보자. 오늘날 통용되는 음악에서의 박은 기본적으로 충돌이 연속적으로 일정한 간격으로 일어나는 것을 뜻한다. 충돌에 의해서 파장이 생기는데 서양의 비트beat 개념은 딱히 하나의 충돌과 그 이후에 나타나는 충돌 사이의 무언가를 유의미한 무언가로 포착하지 않는다. 그보다 비트beat는 치는 행위, 모습 그리고 충돌 그 자체를 일컫고 그 충돌이 나름의 균일성을 가지고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것을 말한다. ‘비트가 빠르다 또는 느리다’라고 할때는 한 충돌과 충돌간의 시간적 간격이 좁고 넓고, 특히 동일한 시간의 단위 안에서 충돌이 일어나는 빈도수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래서 충돌 자체와 그 충돌이 일정한 속도로 연속적으로 일어나기에 생기는 시의 간격(시간)에 관한 것이 이 “충돌과 충돌 사이의 무언가”에 대해 확장되어 고찰될 수 있는 지점이 될 수 는 있지만 비트라는 단어 자체에 그 뜻이 함축되어있지는 않다.


비트Beat

일정한 간격으로 발생하는 타격. 음악적인 비트의 구성 요소로 간주되는 것은 일련의 충돌이다.

박拍

두 반대 끝이 교환되는 것, 하나의 에너지 상태의 변화이다. 이는 교차점과 타격뿐만 아니라 그 사이의 (빈) 공간을 포함한다. 충돌과 충돌 사이의 공간은 각 타격이 시간적으로 발생하는 위치 만큼이나 혹은 더 결정적으로 ‘박’을 정의하는 중요한 요소다.


이와 달리 박拍은 일정한 간격으로 반복되는 충돌(눈금)의 의미도 포함하면서 충돌과 충돌 사이에 빈 공간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박을 이루는 요소로 보았음을 알 수 있다. 글자 자체가 손바닥이 부딪히는 모양이 대변하는 ‘치다’를 의미하는 재방변 수와 충돌 이후 손과 손이 멀어지면서 벌어지며 드러나는 빈 공간을 나타내는 백白자가 결합한 형태로 이뤄졌다. 두 요소가 모두 ‘박’의 뜻을 이룬다는 것을 인지하였음을 보여준다. 박은 음악의 시간적 눈금을 그어내는 지점을 나타내는 음의 시간적 측면 뿐만 아니라, 그 박이 박으로써 구분되는 시작점 이후 실재 공간에서 파장으로써 팽창하는 공간적 요소를 모두 하나의 박으로 정의하고 있는 것이다. 박의 한자인 拍은 형성문자로 분류되어 일반적으로 뜻을 나타내는 글자와 음을 표현하는 글자의 결합으로 이뤄졌다 본다. 하지만 음을 나타내는 글자가 의미에 있어 맥락없이 선택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형성문자로 알려져 있는 글자도 음과 뜻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 다만 후대에는 음을 나타내는 글자에 해당하는 글자가 지닌 뜻을 상세히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해석하지 못했을 수가 있다.

이렇게 상대相對로서 상호작용하는 두 면을 떼어놓치 않고 하나의 개념으로 쓰는 경우는 상당히 많은 단어에서 발견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동양적 세계관에서 하나, 일체에 잠재적으로 존재하는 두 극이 상호 의존적으로 작용하는 하나라는 것을 일관되게 세상을 지칭하는 말에 적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우宇 집주宙로 표현하는 ‘우주’는 영어로 ‘space로 공간만을 지칭하거나, ‘universe’와 같이 ‘turned into one 하나로 환원됨’을 뜻하는 단일한 단어와 의미가 그 한 단어를 표현하지만 우주는 글자의 구성이 사뭇다르다. “우주”의 각 글자는 모두 집을 뜻하지만 다 같은 집이 아니다. ‘우’자는 공간을 ‘주’자는 시간을 뜻하며, 이 두 종류의 “집”은 팽창하여 그 끝이 없는 펼쳐지는 시공간인 동시에 만물을 품는 그런 ‘집’을 우주라고 부르는 것이다. 우주라는 말 자체에 시간과 공간이 우주를 구성하는 기본 뼈대라는 것을 담아내었던 것이다. 다른 예로는 지속되는 시간을 뜻하는 ‘duration’이 있다. 음악에서 duration은 (상대적이고도 절대적인) 소리의 길고 짧음을 나타내는 지칭하는데 한국어로는 간단히 음의 ‘길이length/duration’이라고 말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길다’와 ‘길이’가 같은 어근을, ‘long’의 명사가 ‘length’임을 상기해보면 길이는 ‘장’으로 길고 짧은 모두를 대표하여 말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음의 길고 짧음을 ‘음의 길이’라하지 않고 상대되는 두 말인 ‘장長’과 ‘단短을 합쳐서 ‘장단’이라고 한다. 긴 음과 짧은 음은 상대적으로 성립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장단은 음양개념과 마찬가지다. 음의 길고 짧음의 물리적 속성과 운동 방향을 포함한 개념으로 장과 단이 서로 맞물려서 작용하기 때문에 이 두 글자가 지칭하는 양면(양극)이 함께 붙어야 온전히 하나의 단어를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

‘박’은 한 음절의 한 글자이긴 하지만, 많은 한자가 그렇듯 각각 다른 뜻을 지닌 글자가 결합된 형태이며, ‘우주’나 ‘장단’과 같이 두 반대되는 개념이 함께 온전한 하나의 개념을 이뤄낸다는 것이 동일하다. 손을 뜻하는 ‘재방변 수’가손바닥이 부딪히며 내는 충돌을 강조하여 그려내었다면 ‘흰 백’자는 역시 충돌과 충돌 사이의 빈 공간이 충돌과 함께 박을 이루는 주요한 요소임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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