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음악의 강유剛柔

강유剛柔는 언뜻 소리의 크고 작음을 말하는 세기loudness 즉 강약強과 비슷한 듯 하지만 전혀 다른 차원의 내용을 다룬다. 모든 음악에는 소리의 세기의 다양함이 존재한다. 서양음악에서 소리의 세기, 강약과 관련된 다양한 요소들이 있는데, 셈여림dynamics, 일부 강세와 관련된 아티큘레이션articulation, 각 박자표에 해당하는 기본적인 강세 패턴등이 그것이다. 물론 음악적으로 자세히 들어가면 조금 더 종합적인 감각이 활용되어 인지되고 표현되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이 맥락에서 소리의 세기란 절대적인 데시벨의 음가와 이의 상대적 차이로 인하여 발생하는 다양한 조화에 대한 것이다. 그러나 강유는 음악의 기본적인 운동의 뼈대를 설명하는 개념으로써, 음양과 마찬가지로 하나를 이루는 상대적 두 극이 상호작용하는 것을 일컫는다. 

강유란 말 그대로, 단단함과 부드러움, 굳세고 유한 성질을 말하는데, 이는 물론 소리의 세기(loudness)에도 영향을 미치지만 사실상 음계, 장단 모두에 내재된 음양의 조화를 물리적 현실에 드러나는 성질로써 표현한 것이다.

소리라는 물리적이면서 경험되는 현상적 실상에서 우주적 원리를 찾아 이를 다시 실상에 적용하여 문명과 문화적 틀과 도구가 된 우리의 유산이 있다면, 첫째로 한국 전통음악이 있고 둘째로 한글이 있다. 한국 전통 음악은 이론적 사상적 틀 보다는 실기적인 무형 유산으로 이심전수로 이어져 왔기에 이러한 우주철학에 기반한 사상적 유산이 구체적으로 기술된 문헌으로는 전해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한글의 경우 사상적 근간, 원리와 동기 등을 상세하게 글로 남겼다. 한글은 음성학적 연구와 고유의 철학을 바탕으로 만든 문자이기 때문에, 훈민정음 해례본에는 음악에 적용될 수 있는 동일한 철학적 체계와 소리에 대한 원리에 대한 내용을 발견할 수 있다. 실제로 이러한 원리가 오음에도 적용된다고 해례본에서도 밝히고 있다. 물론 이 ‘오음’이란 것이 우리가 아는 음의 집합인 음계를 직접적으로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오색, 오미, 오감, 오장, 오방 등과 같이 현실세계의 구분을 담당하는 오행과 관련있다고 볼수 있다.

해례본 제자해는 우주에 두루 통하는 원리가 하나의 양과 하나의 음과 이에 따른 오행이며, 모든 생명과 만물에 우주적 원리 두루 적용됨을 이야기하며 문을 연다. 사람의 말소리(人之聲音 인지성음)에도 또한 동일하게 이 원리가 내재되어 있고, 이를 사람이 잘 알아보지 못할 뿐이라고 말한다. 이는 훈민정음(한글)을 만드는데 있어서 그저 사람의 지혜로 창작한 것이 아니라, 말소리에 자연적으로 내재된 우주적 원리를 반영하고 이에 따라서 구성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어서 모음과 자음에 해당하는 글자들 각각 이러한 원리를 따랐음을 상세히 설명하고, 초성, 중성, 종성의 합의 조화로 이뤄지는 자운(한 음절에 해당하는 합자)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라고 이야기하며 초성과 중성에 대해 이렇게 아래와 같이 기술한다. 



以初聲對中聲而言之. 이초성대중성이언지.

陰陽 天道也. 剛柔 地道也. 음양천도야, 강유 지도야

中聲者 一深一淺一闔一闢 중성자 일심일천일합일벽

是則陰陽分而五行之氣具焉 天之用也. 시즉음양분이오행지기 구언 천지용야

初聲者 或虛或實或颺或滯或重若輕 초성자 혹허혹실혹양혹체혹중약경

是則剛柔著而五行之質成焉 地之功也. 시즉강유저이오행지질성언 지지공야


초성 대 중성으로써 말하면

음양은 하늘의 이치요, 강함과 부드러움은 땅의 이치라.

중성이 한편으로 깊으면, 다른 한편은 얕고, 또 한편이 닫히면, 다른 한편은 열리니,

이는 곧 음양으로 나뉘나 오행의 기운을 갖추고 있는 것이니 하늘(ㆍ)의 작용이다.

초성이 허하고, 실하고, 날리고, 엉기고, 무겁고, 가벼운 것은,

곧 강함과 유함이 나타나 오행의 바탕이 이루어진 것이니, 땅의 공(功)이다.


음양이 하늘의 이치이고 강유가 땅의 이치라고 하는 것은 강유가 비물리-형이상인 음양의 물리적, 현상적 표현임을 말한다. 초성은 음양의 양이고 동정의 동에 해당하는데, 초성의 실질적 작용은 ‘땅’에서 이루어지며 ‘땅’의 운행은 오행을 바탕으로 하므로 초성의 ‘강유가 나타나 오행의 바탕이 되는 것이 땅의 공功’이라 한 것이다.

우리가 이러한 음양, 강유 또는 동정 등의 두 극에 관한 이야기 할때에 반드시 기억해야할 함의된 개념은 바로 ‘중中’이다. 음양은 하나인 우주에 드러나는 상대적인 두 극을 의미한다(天地之道 一陰陽五行而已). 그 음양이 존재하는 바탕인 그 하나가 바로 중이며 운동의 축 또한 중이다. 중에 관해서는 이 전 글에서 집중적으로 다뤘다.

소리의 강유는 하나의 음운에서 첫소리의 자음과 종성의 자음이 각각 굳셈과 부드러움으로 드러난다. 이 두 자음은 각각 천지인에서 천과 지에 해당하는데 천지라는 말은 지구의 지표면에서 올려다 보는 하늘과 지표면의 땅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본래 천지는 형이상학적 개념이다. 즉, 하나의 우주 안에 작용하는 두 극이 조금 더 현실적인 세상을 구성하는 요소인 ‘하늘’과 ‘땅’으로 상징하는 표현으로써 천지라는 말을 쓰는 것이며, 천지인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우리가 ‘인’이라고 함은 실재 인류와 개별 인간을 지시하기도 하지만, ‘중’을 대표하고 상징하는 개념적인 용어라고 보아야 한다. 

動者 天也. 靜者 地也. 兼互動靜者人也 동자 천야. 정자 지야. 겸호동정자인야.

움직이는 것은 하늘(초성)이요, 멎어 있는 것은 땅(종성)이며, 움직임과 멎음을 겸한 것은 사람(중성)이라.

즉, 천체의 차원에 천지인은 다음과 같다. 강剛이며 동動인 초성은 태양이고, 유柔이며 정靜인 종성은 지구 땅이 아닌 달이고, 이 둘을 아우르며 “겸한” 중성은 바로 일월의 기가 만나는 지구이다. 천체의 차원에서 천지인은 태양, 달 그리고 지구인 것이다.


초성과 종성 자음은 씨앗인데 각각 양-음, 동-정, 그리고 강-유의 성질을 띄고 그 두 극이 중성인 모음에서 작용하여 음운, 한글의 한 글자가 만들어진다. 초성(1, 천)과 종성(2, 지)이 만나는 중간자적 자리가 중성인 모음이며 이것이 바로 천지인에서 ‘인’, 3에 해당한다. 우주는 그 자체로 최초의 하나(1)인 전체다. 우주라는 장(場,field)자체가 중中이다.


이러한 천지인의 강유 관계를 음악적 차원에서 살펴볼 수 있다. 피아노 현을 보면 모든 현악기들과 마찬가지로 줄을 잡아 고정시킨 양 끝이 존재한다. 고정된 줄의 양끝을 정적인 상태로 유지시켜주는 장치인 댐퍼가 살포시 줄 위에 얹혀있다. 타건 후 그 댐퍼가 들어올려지고 해머가 줄을 순간적으로 탕- 하고 치는 기계적인 작용으로 소리를 내는 것이 피아노다. 여기서 줄을 팽팽하게 잡아 당기는 양 끝이 동일한 성질을 지닌 것으로 생각할 수 있으나, 동일하게 자음인 초성과 종성이 각각 강유의 성질로 중성에서 작용하듯 줄의 양 끝에도 강유가 있다. 기본적으로 모든 현악기들은 오로지 고정된 지점과 조율을 할 수 있는 지점이 있다. 고정된 지점은 단단하고, 느슨히 풀 수도 더욱 조일 수도 있는 반대편 지점이 있다. 이렇게 줄을 고정한 양 끝의 성질이 각각 다름을 알 수 있다. 고정된 지점은 ‘강’이고 조율을 하는 끝은 ‘유’인 것이다. 세 요소로 구조화된 악기는 운동하여 하나의 소리로 변환되기 이전의 체(體, 이면, 본질)의 상태다. 피아노 현이 양 끝단의 강유가 줄이라는 중의 자리에서 부딪혀 작용하는 것은 바로 천지인이 작용하는 것이고 이로 인하여 하나의 소리나 생성되어 현실세계에 드러나는데, 이것이 바로 용(用, 실재, 현실)이다. 이 하나인 소리는 곧 강유의 양끝과 중간의 세 요소를 갖추어 현현한다. 이는 마치 정자와 난자가 만나 자궁에서 자라 하나의 사람이 만들어지고 자라난 그 사람에게도 상중하가 존재함과 마찬가지다.

훈민정음에서는 자음인 초성(천天, 양陽, 강剛, 동動)과 종성(지地, 음陰, 유柔, 정靜)이 각각 소리의 음양의 양극이면서 이 음양이 중성으로 연결되어 교차하는 모습을 이렇게 설명한다.

而爲初亦爲終 亦可見萬物初生於地 復歸於地也. 이위초역위종 역가견만물초생어지 복귀어지야

초성이 되기도 하고, 종성이 되기도 하는 것은 역시 만물이 땅에서 처음 나서 다시 땅으로 돌아가는 이치와 같다.

중성은 강유가 다만 만날 뿐만이 아니라 교차작용이 일어나며 유의미한 존재(음운)가 탄생하고 자라고 완성되는 장場이다. 초성과 종성은 여기서 각각의 음소가 지닌 소리를 넘어선 변화한 소리를 갖추게 된다. 종성에서 한 단위의 소리인 음운이 멎어(정) 소리의 이룸을 완성(성)하는데, 이 지이자 음이며 유이고 정인 종성은 곧 천이며 양이고 강이며 동인 다른 단위의 소리의 초성으로 교차하는 것이다. 이는 초성과 종성, 즉 음양이 서로의 뿌리인 것과 마찬가지다. 소리의 시작과 끝이 천지이고, 이는 소리의 시작과 맺음을 이어 동적이면서도 정적인, 음양을 모두 겸한 중성모음은 ‘인’이다.

이렇게 중中이 없이 음양은 존립이 불가하다. 많은 경우 중中을 은연중에 논의에서 제외하여 오로지 이원적인 개념을 다루는데, 이는 물리적인 운동의 현실을 보지 못하고 오로지 두루뭉술하고 애매하게, 개념적으로만 피상적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폐해가 있다.

하나라는 우주 안에 두 극이 존재함으로 3요소(천지인 삼재)가 여기서 이미 발생하며, 두 극의 온전한 존립에는 반드시 삼자가 있다. 운동의 중심이면서 운동의 장으로 양극이 작용하는 것이 바로 제 3요소인 ‘인’이다. 여러 차원에서 발현된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인간의 생물학적 번식과정을 보면, 양기인 정자와 음기인 난자가 각각 그러한 있음 자체로는 번식이라는 생명 활동에 유의미한 것이 아닐 것이다. 이 둘이 만나는 어떠한 운동 작용 또한 그러할 자리인 엄마의 자궁이 없이는 절대 불가능하다. 다른 예로는 척추뼈와 갈비뼈, 그리고 이 둘 사이에 붙어있는 횡격막이 있다. 뼈의 일종인 척추와 갈비뼈는 근육인 횡격막을 잡아당기며 지지하는 양 끝이라고 볼 수 있다. 자음의 초성과 종성에 강유가 있듯이, 척추는 초성과 같은 강, 갈비뼈는 종성과 같은 유로써 횡격막이라는 중의 자리에서 작용하여 사람의 호흡을 돕는다.

더욱 정확하게는 우리가 아는 원자의 구조 모델에서 이러한 구조를 찾아볼 수 있다. 양성자(+, protons)와 전자(-, electrons) 각각, 양-음, 강-유에 해당하는데, 여기에 양성자와 서로를 붙들고 있으면서 원자핵(nucleus)을 이루는 중성자(neutrons)도 존재한다. 이 원자핵은 강한 핵력(核力)으로 이뤄진다. 그 핵력 자체가 한 원자의 중심이 되며, 중성자가 결합할 수 있는 중성자가 중심이기도 하며, 전자가 그 중심을 공전한다. 즉, 원자의 양 에너지와 음 에너지에도 그 둘이 작용하는 중심과 중성을 띈 장이 존재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천지인, 음양, 강유 등의 고전적인 개념들은 결코 모호한 개념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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