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변화와 계승
변화
변화變化라는 말은 본래 단순히 어떤 상태나 위치 등이 바뀌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물론 일상에서 우리는 표면적으로 달라진 점들을 ‘변화했다’라고 이야기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기후 변화로 인해 올해는 초겨울에 꽃이 폈다.’라던가, ‘친구가 머리를 보라색으로 염색하니 분위기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와 같이 말이다. 아니면 농구공이 던져져서 포물선을 그리며 이동하는 것을 두고 ‘공의 위치가 변화한다’라고도 표현 할 수 있다.
변變자는 ‘어지러울 련䜌’과 ‘칠 복攵’자가 결합한 형성문자라고 알려져 있다. 䜌자는 ‘실 사’자가 ‘말씀 언’자를 가운데로 하여 양 옆에 위치한 형태로 구성되어있으며, 어지럽다라는 뜻 이외에 ‘잇다, 연결하다’라는 뜻도 있다. 실의 두 가닥이 교차하여 얽히고 설키는 모양을 이 䜌자가 형상화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물리적 형상을 본따서 만들어진 글자는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더 추상화된 기의signified을 표현하는 기표signifier로써 기능하게 되기도 했으나, 문자가 지어진 연유를 파고들어 보면 그 물리적 본체가 되는 뜻을 다시금 발견해낼 수 있다. 실이 교차하며 꽈배기처럼 꼬여가는 것이 핵심이 되는 이미지인데, 이는 두 극이 서로 교차하며 운동하는 모습이기도 하다.
이러한 련䜌자에 ‘칠 복’자가 더해짐으로써 바로 두 극이 교차하는 중에 서로가 서로를 ‘치는’, 충돌의 모습을 그려낸 변變자가 나왔다고 할 수 있다. 즉 변화라는 단어를 이루는 ‘변’자는 두 극이 교차하여 부딪히는 모습을 나타내며 이는 ‘변화’의 과정 중 하나의 단계임을 뜻하는 것이다.
화化자는 ‘되다’라는 뜻으로 언뜻 단순한 듯 하지만 조금 더 추상적인 개념을 담았다. ‘사람인 변’과 ‘비수 비’가 합쳐진 글자이며, 갑골문을 보면 두 사람이 엇갈려 있는 모양으로 그려졌다고 한다. 머리가 위를 향해 바로 서있는 ‘사람인 변’자는 산 사람을, ‘비수 비’자는 머리가 아래를 향하고 있어 죽은 사람을 상징하는 것이라한다. 즉, 상태가 완벽하게 뒤집어진 바뀜을 형상화 한 것이다.
‘변’자와 ‘화’자 모두 일종의 바뀌어짐을 의미하지만 글자를 통해 드러내고자 한 물리적 운동과 이에 따른 뜻에는 차이가 난다. 결론적으로 변화라는 말 자체가 하나의 ‘바뀜’을 나타내며 이는 일련의 과정을 거쳐서 일어나는데, ‘변’의 과정과 ‘화’의 과정을 모두 거쳐야 온전하며 유의미한 ‘바뀜’이 일어남을 시사하는 것이다.
변화變化가 가장 일반적인 표현이기는 하지만 ‘화변’이라는 말도 쓴다. 각 글자는 동일하게 ‘되다 화’자와 ‘변하다 변’자로 되어있고 다만 그 선후가 바뀐 것이다. 표면적인 뜻은 변화變化나 화변化變이나 같지만, 변화와 화변은 각기 다른 프로세스를 나타낸다.
화化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화는 생사生死를 오고 감과 같이 완전히 뒤집혀 바뀐 상태를 형상화한 문자다. 이는 변화의 과정 속에서의 ‘화’가 변화를 맺음과 이룸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화학반응이 일어나기 전 두 원소는 (비교적) 안정되어 있는 상태로 있다. 철이 산소를 만나 반응을 하게되면 철과 산소의 각기 원자/분자의 레벨에서 역동적인 운동이 일어난다. 기존에 원소가 결합된 구조적 형태를 해체하고 반응하는 다른 원소들과 재결합하면서 열이 발생하는 등의 변變이 일어난다. 화학반응을 완전히 마치면 비로소 화化한다. 새로운 형태의 구조가 만들어지고 그 새로운 구조로써 다시금 안정된 상태에 접어들게 된 것이다.
변變
원소의 원자들의 운동으로 결합된 분자 구조가 해체되고 재결합하는 것이 바로 ‘변’의 과정인데, 이는 안정을 벗어나 움직이며 기존의 고정된 틀을 벗어나 팽창하는 운동성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시작-과정-결과라는 삼단계에서 ‘과정’에 해당한다. 또한 기존의 안정된 상태를 떠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가며 펼쳐내는 음중지양과 더불어 그 탐색과 모색을 통해 이전과는 다른 구조를 정립하고자 수축하는 닫아가는 양중지음의 에너지적 방향성을 동시에 갖추었다. ‘변’의 시작과 끝은 모두 안정화된 상태인 ‘화’가 있다. 그러나 ‘변’이 시작할 때의 화化와 맺을 때의 화化는 질적으로 다르다. 따라서 ‘변화’는 단순한 형태적 ‘변이’나 ‘변모’와는 달리 음양 양극이 하나의 장(field) 안에서 교차하는 에너지적 운동을 총체적으로 일컫는 말인 것이다.
화-변-화
위 도표는 화(化,1) - 변(變,2) - 화(化,3)의 과정을 그린 것이다. 태양은 양 에너지를, 달은 음 에너지를 나타낸다. 가운데 곡선은 음과 양이 ‘변變’을 거치면서 부딪히고 교차하여 그 위치가 뒤집혀 바뀐 모습을 보여준다. ‘변變’을 지나 당도한 3의 화化에서 음과 양의 위치가 달라져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직선으로 표현된 음양은 지구라는 바탕이자 중中에 24시간 하루 중 해와 달이 작용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해가 ‘중천’에 떠있을 때에 햇빛이 가장 많이 지표면에 닿으며 달의 위치와는 관계 없이 오후 중에 달 에너지가 지표면에 미치는 영향은 상대적으로 줄어들게 된다. 0시와 24시는 12시와 완벽한 대비를 이루는 극이면서, 실재로는 같은 지점이지만, 매우 미세한 차이로 다르다. 0시와 24시 모두 음양 에너지가 수축하여 만나는 지점을 나타낸다. 12월 23일의 24시와 12월 24일의 0시는 완벽히 같은 ‘시’이나, 12월 23일의 24시는 그 날의 0시부터 하루를 돌며 다시 수축하여 ‘변화’를 이룬 3의 수축 지점이지만, 12월 24일의 0시는 그 지점, 또는 시점이 또 다른 화-변-화의 과정을 지나도록 하는 새로운 시작이다. 끝과 시작이, 또 시작과 끝이 맞물려 가는 것이다. 한편, 화-변-화는 헤겔의 논리학에서의 정반합, 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삼단논법 등과도 그 결을 같이하기도 한다.
위의 화-변-화의 전 과정이 곧 바로 변화의 원리이자, 본래 변變자와 화化자를 통하여 드러내고자 내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계승繼承
변變자를 구성하는 ‘련’자가 ‘실 사’자를 통하여 두 실이 교차하며 꼬아지면서 이어지는 변화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계繼자도 마찬가지로 실이 교차하며 이어짐을 뜻하는 문자들로 구성하여 ‘잇다’라는 뜻을 나타내게 되었다. 승承도 동일한 뜻을 지녔으나 계와는 다른 모습으로 ‘잇다’를 묘사하였다. ‘계’가 지속하고 이어간다는 ‘proceed’와 같은 의미라면, ‘승’은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갈때에 이를 이어 받아서 전傳하는 것 ‘convey and deliver’ 의미가 포함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변화와 계승
일반적으로 ‘계승’은 “전통을 계승하다”와 같이 과거에 이미 형성된 형식과 내용을 이어간다는 맥락에서 쓰이고 ‘변화’는 이와 반대로 시간에 따른 자연스러운 변모, 이동, 때로는 변혁적인 현상을 지시할때에 쓰인다. 그러나 본래 ‘변화’란 이전 것(1)의 확장과 수축을 통해 질적 변變이 일어난(2) 내용을 받아 다시금 새로운 안정된 하나의 지점(3)으로 전달하는 일련의 과정을 통칭하는 것이며, (화)변화라는 운동 속에 계승이라는 운동이 함께 한다. 변화는 계승을 통하여 일어나고 이어지고 완성되는 것이다. 전통의 계승 속에도 질적 변화가 있을 것이고 혁신적 변화 속에서도 전통의 계승이 있는 것이며, 어떻게 보면 이러한 원리를 창작과 전통 계승에 있어 기준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전통 계승에도 유의미한 변화를 이뤄낼 것이고, 혁신적 변화가 두드러지는 창작에서도 변화의 계승적 면모를 충분히 이해하고 인식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거시적인 음악의 형식적 변화와 계승에 관하여 논의하기 위해 두 개념을 고찰한 것은 아니다. 조금 더 실질적으로 모든 소리의 발생에 발견되는 기본적인 운동원리를 다양한 각도로 살펴보기 위한 노력의 일부다.
음악에서 나타나는 변화-계승 원리
위에 논한 바와 같이 변화-계승은 물리적 운동 원리를 표현한 말이다. ‘음운’이라는 말소리의 기본 구조, 그리고 이와 동일하게 작동하는 음악적/비음악적 소리의 구조 및 발생 과정 또한 이러한 변화-계승 원리를 반영하고 있다. 음운은 일종의 절節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유의미한 말소리 중 완결성을 이루는 최소 단위라는 것이다. 나아가 문학적/음악적 구절, 소절과 같은 다양한 절節들이 존재하는데, 이 모든 단위화 되는 절節들은 넓은 의미에서의 박拍이라 볼 수 있다(“박”편을 참고) 박拍 또한 소리가 끊어 맺음으로 하나의 단위를 이루며, 변화-계승 원리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모든 시작은 수축된 지점에서 일어난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수數에 물건의 개수를 세며 직선적으로 나아가는 셈의 기호라는 의미를 넘어서서 이해했다. 각 수에 특정한 형태적이면서 에너지적인 의미들이 있다고 여긴 것이다. 하나(1)를 뜻하는 ‘모나드’는 일종의 씨앗인데, 성장하여 다양한 것들로 이뤄질 우주적 전체로써의 하나를 품고 있는 하나(1) 말한다. 자궁을 뜻하기도 한다. 기하학적 모양인 원 ⭕️이 ‘하나’를 상징했는데 이 원은 모든 기하적 형태와 패턴이 발전해나가는 자궁과 같은 뿌리라고 보았다. 한국 철학에서 원(1)-방(2)-각(3)의 원 또한 ‘둥글다 원圓’을 나타내는 점도 주목할만 하다. 그 고대 수학자들은 모나드를 최초의 무엇, 본질, 기초 등으로 이야기 했다. 2를 뜻하는 디아드dyad는 만물의 시작이 되는 하나가 분열하여 나타난다. 하나에 수축된 형태로 존재하던 두 극이 갈라지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이질적인 존재가 된다. 중요한 점은 2, 디아드는 하나에서 양극으로 분열하려는 힘과 태초의 하나됨으로 다시 돌아가려는 수축하는 힘이 동시에 작용한다는 것이다.
“The paradox of the Dyad is that while it appears to separate from unity, its opposite poles remember their source and attract each other in an attempt to merge and return to that state of unity.”
"디아드의 역설은, 이것이 단일성에서 분리된 것처럼 보이지만 그의 상반된 극은 자신들의 근원을 기억하며 서로를 끌어당겨 단일성의 상태로 병합하고자 하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 마이클 S. 슈나이더
이러한 고대 그리스 수학자의 이해가 위의 화(1)-변(2)-화(3) 도식에서 변(2)에 해당하는 부분에 그대로 나타난다. 음과 양이 1에서는 한 점에서 하나로 수축되어 합해진 상태로 있으나, 그 둘이 분화되고 서로 멀어지면서 2의 분열 과정(계)이 진행된다. 그러나 음극과 양극은 구심력에 의해 서로에게 돌아오며 새로운 합을 이룬다. 원심력과 구심력의 작용, 분열과 수축의 과정 모두가 일어나며 운동성이 두드러지는 과정이 바로 디아드, 2, 변變이다.
분열 되었던 두 극이 다시 수축하여 마침내 새로운 합의 단계로 넘어가는데(승承), 계승이 완료되어 나타난 이러한 새로운 통합이 3, 트리아드triad다. 새로운 합은 하나에서 다수(many)로 나아가는 데에 있어 최초의 기반이 되는 새로운 시작이기도 하다. 기하학에서 면이 만들어지는 최소 꼭지점 또는 선의 수가 3이고, 시작이 있으면 과정을 지나 마침내 결론을 짓는 기초적인 논법이 3단 구성이며, 정자와 난자가 합을 이뤄 다음 세대를 잇는 새 존재를 낳는 것 등, 유의미한 맺음인 동시에 곧 그 이상의 다수를 펼쳐낼 시작으로써의 합合이 바로 3인 것이다. 1과 3 모두 ‘화’이며 수축, 구심력, 안정, 통합 등의 성질을 지녔다.
한글은 초성-중성-종성의 구조로 되어있다. 잘 알려진바와 같이 음성학적 원리가 문자에 그대로 반영되어 만들어진 것이 한글이다. 다시말해 이는 하나의 최소 단위로써의 소리에서 그 물리적 성격인 시작-과정-결과, 화-변-화의 원리가 작동함을 포착해내어 문자 구성에 반영한 것이다. 이성적 생각과 뜻(양)이 사람의 몸, 발성기관(음)과 만나 발생하는 소리의 시작은 좁고 수축된 점(1)이나 입이 벌어지고 호흡기관이 팽창하면서 소리에 울림은 길고 넓게 퍼지고(2) 다시 두 입술이 다물어지고 한 음운에 절도가 생기며, 맺음으로 수축된다(3). 이성적으로 나타내고자 했던 뜻이 사람의 감정을 만나 어우러져 사람을 통해 소리가 되어, 인류의 문화인 언어 활동으로 무한히 펼쳐내게 된다.
음성학적 법칙은 물론 만물의 모든 것들이 그렇듯, 음악적 소리 또한 작은 단위들이 큰 단위들을 이뤄가며 생장성을 이루며 구성된다. 한 음, 한 박은 물론이거니와 노래의 한 소절, 한 악구 등의 단위에도 화-변-화가 끝없이 일어난다. 특히 박은 한국 전통음악에서 이러한 변화를 적극적으로 도모하는 방식으로 연주되고 이해된다. 단순 반복과 그 패턴의 이어짐이 아니라, 한 장단의 모든 내용을 품은 첫 박이 둘째 박에서 분화되었다 다시 부딪혀 3이라는 합을 이룬 것이 4, 5, 6 박으로 확장하고 펼쳐지는 기초가 되고, 4, 5, 6박의 팽창하며 한껏 성장한 에너지가 9에 이르러 대각, 즉 그 동안 태어나고 성장하여 펼쳐낸 모든 에너지를 단단히 응축하고 영글게 한다. 10, 11, 12에서 한껏 풀며 다음 장단의 시작을 도모하도록 했다. 1, 2, 3박이라는 하나의 단위가 화-변-화를 이룰 뿐만 아니라. 1, 2, 3박이 또다른 하나(화)이며, 4, 5, 6박이 또 다른 둘(변)이고 7, 8, 9박이 또 다른 셋(화)이 되어 화-변-화가 더 큰 사이클에도 드러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개별 소리의 발생도 일종의 질적인 변화를 통한 창조적 운동이다. 부딪힘을 통해 태어나는 모든 음악적 소리는 이러한 화-변-화의 3단계를 거쳐야만 드러난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이 자신의 창작곡이든 기존의 곡이든 악상을 피아노로 연주한다고 해보자. 먼저 소리로 현현하지 않은 음악적인 내용은 일종의 상像이며 이에 대한 상想이 바로 그 연주하는 악곡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연주자는 그 태초의 상(1)을 갖고 자신의 몸에 움직임(2)을 일으키는데 이때는 처음에는 멈춰서(안정, 수축) 관계성이 드러나지 않았던 두 극인 피아노 악기와 연주자의 손이 고요와 침묵을 깨고 서로에게서 멀어지며 공간적으로는 팽창한다. 피아노와 연주자의 손은 다시 가까워진다. 이때 진정한 의미의 변화가 일어난다. 악상은 더이상 상像의 형태로 상想의 차원으로만 존재하지 않고 소리 에너지로 변환되어 물리적으로 드러나며 그 질적인 변화를 이룬다. 에너지적 상태 변화가 이뤄져 사람의 귀에 감지되는 청각적 물리 작용으로 변화한 것이다.
모든 생명과 그 삶, 그리고 인간의 창조적 행위는 모두 낳아(생) 기르고(장) 완성(성)하며 그 완성이 새로운 씨앗이 되어 또 다른 생명으로 이어지는 방식으로 끝없는 생의 고리로 연결되어 이어지고 변화하며 펼쳐진다. 기존에 알려진 노래 곡조를 읊조리는 사람이더라도 자신이 스스로 목소리를 내는 고로 넓은 의미에서 창조적 행위, 생명활동을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같은 곡도 다른 사람을 통해 새로 태어나며 변화를 이루는 것이다. 이렇듯 변화와 계승은 크고 작은 차원의 인간과 자연의 생명활동의 기초적인 1, 2, 3의 삼단계 작동원리의 일환으로 두루 적용되어 변주되고 있다.